'나이, 불륜, 이혼' 논란의 대상이 된 유명 헐리웃 커플들 1부 :: Athtar의 잡동사니

스타들의 사생활은 언제나 대중들의 주목을 받길 마련. 특히 스타 커플의 사생활과 관련한 일이라면 가장 큰 이슈가 되는데, 경사스러운 일이라면 더 좋지만 불륜, 이혼과 같은 부정적 소식의 경우에는 무수한 뒷이야기를 동반하고 있기에, 두고두고 오랫동안 화자 될 이야깃거리가 된다. 오늘은 헐리웃과 연예계에 이름을 알린 커플 중 무수한 화제, 논란을 남긴 스타 커플과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나이 차를 극복한 사랑이었지만…' 존 트라볼타와 다이애나 하이랜드

20대 초반의 신인이었던 존 트라볼타는 1976년 TV 영화 [더 보이 인 더 플라스틱 버블]을 촬영하다 자신의 인연을 만나게 된다. 그 상대는 바로 40세의 베테랑 배우인 다이애나 하이랜드. 이제 막 청춘 스타로 자리매김 시작한 23세의 청년 배우가 17세 연상의 선배 배우와 사귄다는 사실은 당시로써 매우 큰 논란거리였다. 하지만 두 연인에게는 '진짜 사랑'이었기에 자신들을 향한 논란에 개의치 않은 모습을 보이며 공개 데이트를 즐겼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게 되는데, 바로 다이애나 하이랜드가 유방암 선고를 받은지 얼마 안가 1년 후인 1977년 사망하게 된다. 당시 [토요일 밤의 열기]를 촬영 중이었던 존 트라볼타는 촬영장에서 연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활기찬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주인공이 슬픔에 빠진 탓에 영화는 한동안 촬영을 중단해야 했고, 존 트라볼타가 등장해야 하는 일부 장면은 대역을 써야만 했었다. 


현재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 안정된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존 트라볼타는 당시 다이애나와의 연애 시절을 언급할 때마다 자신의 진정한 첫사랑이었다고 회상한다. 

"얼마나 가겠어" 줄리아 로버츠와 라일 로벳

출처 : ranthollywood.com

1995년 4월 줄리아 로버츠가 컨트리 가수 출신인 남편 라일 로벳과 결별을 선언하자, 당시 매체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그럴 줄 알았어"


두 연인의 결혼 소식이 발표된 시기는 1993년 6월, 무려 21개월 만에 결별하게 된 것이다. 


둘이 연인 사이에, 결혼까지 한다는 사실이 갑작스럽게 알려졌기에 그 누구도 이 둘이 어울리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 둘은 가장 어울리지 않은 연인 사이로 유명했다고 해야 할까?


우선 두 사람은 10살이라는 나이차와 함께 너무나 정반대된 성격이 문제였다.


당시 줄리아 로버츠가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하며, 여러 남성 스타들과 스캔들 논란을 불러온 문제아였다면, 라일 로벳은 수줍은 성격에 진지함을 지닌 뮤지션이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을 마릴린 먼로와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작가 아서 밀러의 결합이라고 비유한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결국 서로 다른 성격이 문제를 불러낸 탓이었을까? 


줄리아 로버츠는 결혼 후 얼마 안 가 같은 작품에 출연한 마이클 쉰과의 열애설을 불러오게 되는데, 하필 그 날이 결혼기념일 1주년이었다. 스캔들 소식에 발끈한 라일 로벳은 신인 컨트리 가수 켈리 윌리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텍사스의 한 호텔에서 2일 동안 머문 모습이 파파라치에 의해 포착되고 만다.


그렇게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았던 부부는 갈라서게 되었다. 

'나이 차가 큰 만큼 배신의 상처도 컸던…' 데미 무어와 애쉬튼 커처

16살 차이라는 나이 차 탓에 둘의 연애는 놀라움 그 이상의 충격이었다. 공식적인 장소에 함께 손을 잡고 애정 표현을 한 만큼 둘은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두 사람은 2007년 결혼에 골인하며, 정식 부부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아직 20대 초중반의 창창한 미래를 지닌 애쉬튼 커쳐는 종종 데미 무어 몰래 외도를 하기에 이른다. 몇 번이고 데미 무어에게 사과를 하던 애쉬튼 커쳐는 2010년 사라 릴 이라는 여성과 샌디에이고의 한 호텔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모습이 포착되면서 큰 논란을 불러온다. 


애쉬튼 커처는 다시 한번 데미 무어에게 사과를 하며, 무어가 믿는 종교인 유대교의 카발라로 개종하겠다고 약속했고, 무어 또한 남편에게 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2년 7월 이혼으로 결혼 생활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커쳐는 무어와 이혼한 지 얼마 안 가 밀라 쿠니스와 결혼에 골인해 다시 한 번 데미 무어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단 한 명의 여자만 사랑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프레슬리

"어림잡아 천 명의 여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중에서 진정한 사랑을 느낀 것은 단 한번뿐이다."


로큰롤의 제왕이자, 영화배우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한 명은 누구였을까? 1958년 스타로 성장 중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충격을 받게 되고,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군입대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근무 도중 대위의 딸인 프리실라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엘비스는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다. 자신의 상대가 엘비스라는 사실을 모른 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프리실라는 자신의 생일날 'Love Me Tender'를 부르며 다가오는 엘비스에게 반하게 된다.


그리고 1962년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는데 당시 엘비스의 나이는 27세, 프리실라는 17세였다. 10살이 나이 차 보다 최고의 스타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프리실라는 미국 내 수많은 여성들의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행복할 건만 같았던 결혼 생활은 엘비스의 잦은 바람기로 인해 불행을 맞게 된다. 영화배우와 가수일을 병행한 바쁜 삶을 보내야만 했던 엘비스의 일상탓에 둘 사이에는 감정적인 교류를 나눌 시간이 없었고, 엘비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러 여성들을 만나다 프리실라의 존재를 잊게 된다. 이러한 엘비스의 외박과 외도가 언론 매체에 연일 보도되면서, 프리실라는 큰 상처를 입게 되고,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기에 이른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 6년 만에 이혼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지만, 프리실라와의 이혼으로 엘비스는 큰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이후 폭식증과 마약, 술에 빠져들게 되지만, 프리실라에 대한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8년의 긴 공백기를 가지다 1973년 화려하게 복귀해 건재함을 과시하게 되지만, 여전히 외로움을 수면제와 약으로 채우던 엘비스는 1977년 약물 중독에 의한 심장 마비로 사망하기에 이른다. 프리실라 또 한 엘비스와 이혼 후 여러 남자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할 정도로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했다. 엘비스가 죽은 후 뒤늦게나마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사랑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엘비스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프리슬라 프레슬리는 [총알탄 사나이]와 같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활동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채, 현재 '엘비스 재단'의 이사직을 맡고있다. 

'한국인 입양딸과 결혼' 우디 앨런 감독과 순이 프레빈

출처 : hellomagazine.com

헐리웃 부부 관련 스캔들 중 아직도 화자 되고 있는 논란의 대상. 헐리웃 스타 미아 패로는 프랭크 시나트라,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다, 1980년 영화감독 우디 앨런과 동거하며 안정된 정착을 이어나가는 듯했다. 


두 연인 사이에는 무려 10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전 남편 앙드레 프레빈 사이에서 낳은 자녀와 입양아들, 그리고 우디 앨런 과의 사이에서 낳은 친자녀와 입양한 자녀들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 화목한 분위기 탓인지, 이 당시 우디 앨런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여러 명작을 완성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디 앨런이 입양한 여아 딜런에게 썬크림을 발려주다 성추행을 시도하는 모습을 미아 패로에게 들키게 된다. 사건은 우디 앨런이 빌고 사과하며 무마되는 듯 싶었지만, 미아 패로는 우디 앨런의 이러한 행태에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1992년 자신의 입양 딸 순이와 우디 앨런 사이를 심상치 않게 여긴 미아 패로는 우디의 서재에서 순이의 누드 사진들 발견하게 된다. 충격을 받은 미아 패로는 이 일을 경찰과 언론에 알리게 되고, 이는 곧 미국 사회를 뒤흔든 논란의 사건이 된다. 


길고 긴 법정 분쟁 끝에 미아 패로는 우디 앨런 사이에 있던 자녀들의 양육권을 되찾게 되지만, 정작 순이의 양육권을 찾아오는 데 실패한다. 20살 성인이 된 순이가 양부인 우디 앨런과 함께 사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미아 패로와 함께 하던 시절의 가족 사진

순이의 결정에 놀란 미아 패로는 "우디 앨런이 어리고 순진한 순이를 꼬드겼다."라고 언론 플레이를 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입양아를 데려오려 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잠적한 상태였다.

사회적으로 큰 질타를 받은 우디 앨런은 아무렇지 않은 듯 순이와 함께 동거하며, 영화 작업에 몰두했고, 1997년 12월 이탈리아에서 비밀결혼식을 올리며 입양 관계에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현재, 우디 앨런과 순이 프레빈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며 두 명의 자녀를 입양하며 그들만의 가정을 꾸리고 있다. 미아 패로는 이후 남겨진 자녀들의 양육에 몰두했으며, 유니세프 친선대사직을 겸하며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사회운동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사건이 잊혀질 때 쯤, 우디 앨런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딜런은 2014년 뉴욕타임스에 자신의 글을 기고해, 양부 였던 우디 앨런이 자신을 성추행 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상세하게 고발해 다시금 논란의 불을 지폈다. 

자료출처:celebromance.com, popcultureaddi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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