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17년 피겨인생 [스압주의 - 펌] :: Athtar의 잡동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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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뚝뚝 흘리면서 연습하는 연아

2006 그랑프리 파이널을 앞둔 중요한 시점

태릉빙상장은 공사중이라 연습할 수 없었고 그때 당시엔 태릉엔 피겨전용링크장 하나 없었음.

선수전용 링크장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개방된 링크장에서 연습하던 연아.

연습을 하는 연아를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음.


스케이트, 부상 등 여러가지 문제 등으로 힘든 시기였음. (안 힘든 시기가 없었지만ㅠㅠ)

쉽게 뛰던 트리플 점프에서도 넘어지고 스텝에서도  넘어지고 컨디션은 굉장히 난조였음.


연아 어머님은 연아에게 연습을 그만하고 나가자 했지만

연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연습시간을 다 채우고 나감.

5번째 사진 보면 알 수있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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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종합선수권

2007 종합선수권 대회.

연아는 이미 전 시즌에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했기때문에

2007 세계선수권(시니어부문)에 출전권을 가지고 있었음. 하지만 협회와 피겨맘들이 

"이 대회에 나오지 않으면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주지 않고 못나가게 할 것."

이라고 협박과 경고를 하며 연아에게 압박감을 주었고, 결국 내셔널에 참가하게 됨.


하지만 한국 내 빙상장은 난방도 잘 되지 않아서 오히려 밖이 더 따뜻할 때가 많았고

연습을 할때도 여러개의 옷을 껴입고 두꺼운 점퍼를 입어야만 할 정도로 척박했음.


연아는 이 대회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점프를 하고, 스핀을 돌며 경기를 치뤘지만

합계점수 총 139.66점. 어쨌거나 우승은 했지만 위의 사진 보다시피 연아의 표정은 좋지 않았음.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허리부상과 씨름을 하고 있는 선수이며

경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이 예민했을 선수에게 내셔널참가 강요는 누가봐도 부당했음.

심지어 경기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연습환경도 좋은 것도 아니여서

안그래도 부상을 달고 사는 선수에게 내셔널참가 강요는 부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으면 되었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진 않았을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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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에서의 환상적인 데뷰!

그리고 첫세계신기록.

연아가 처음으로 경기하면서 허리통증을 느껴보지 않았다던 경기.

16살의 연기라곤 도저히 믿기 힘든 어려운 열정적인 탱고를 보여줌


첫 세계선수권 경기에서 세계신기록 71.95점을 작성하며 쇼트 1위를 기록.

데뷰와 동시에 우승까지 엿볼 수 있는 첫 세계선수권이었지만 

프리에서 부상의 여파로 점프에서 2번의 실수가 나오고 3위로 대회를 마침.


프리에서 아쉬운 실수가 있었지만 전세계에 <김연아> 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고

한 해설자는 연아의 경기를 보고 앞으로 여자싱글의 기준을 짓게 될 선수라고 작두탄 예언도 함.


▷ http://cafe.daum.net/ok1221/9Zdf/91668

김연아가 세운 세계신기록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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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세계선수권

많은 팬들을 분노시켰던 2008 세계선수권대회.

고관절부상으로 고생하던 때, 고통이 너무 심해 기권할 생각까지 했지만

진통제까지 맞으면서 퉁퉁 부은 얼굴로 혼신의 연기로 경기를 치른 연아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음.

 

퉁퉁 부은 얼굴.



그리고 연아 다음의 순서는 아사다 마오.

당시 트악을 시도하다가 빙판에 그대로 자빠진 아사다는 그 충격의 여파로

20초가량을 안무 없이 활주만 했지만 감점은 없었고 (원래 15초동안 아무 연기 없이 활주만 하면 감점이 주어짐)

그리고 우승을 차지한 건 바로 아사다 마오였음.

당시 경기장 내에는 야유가 들끓었고 마오는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에서 망언을 쏟아냄

"다른 선수들이 나를 넘으려 했지만 넘지 못했다, 나는 실수를 해도 1등을 한다." 등등..

그리고 한 잡지에 실제로 실렸던 사진.

남자 싱글을 보면 우승자가 가운데에, 은메달과 동메달은 각각 왼쪽 오른쪽에 위치해있고

이름 밑에 메달의 색깔이 적혀있지만 여자싱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음.

우승자였던 마오는 왼쪽에, 가운데에는 연아가 연아가 있었고 메달의 색깔도 적혀있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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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아이스쇼 사건

현대카드 슈퍼매치 아이스쇼에 김연아도 선수로서 초정되었음.

하지만 쇼가 열리기로한 곳의 지붕이 불에 타면서 공연이 취소되었음.


화재전까지만 해도 "현대카드 아이스쇼"였던 것이 갑자기 "김연아 아이스쇼"로 둔갑되어 보도가 되기 시작.

어른들은 다 뒤로 숨고 겨우 18살이었던 어린 연아가 혼자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를 했음.

이 쇼에 초정된 외국선수들은 연아 혼자서 총대를 매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함.



그리고

연아가 홀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과 공연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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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그랑프리파이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국제규모의 대회가 열리고, 김연아까지 출전하는 상황

많은 관중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시 되는 상황에

김연아의 우승을 당연하다는 듯 기대하는 압박감에 김연아는 결국

쇼트경기를 마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음.


당시 선수의 대기실 복도 상황까지 카메라가 붙어서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해서

sbs측에서 많은 욕을 먹었던 걸로 기억 됨.

(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예민한 시기였던 만큼 중계측에서 조심해줬어야 하는 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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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세계선수권

처음으로 큰부상 없이 참가한 세계선수권 대회, 부상없는 유나가 얼마나 강력한지

강인하게 각인시킨 대회.


그리고 두번의 고배 끝에 마시게 된 세계선수권 금메달.

올림픽을 앞둔 연아에게 세계선수권 금메달은 자신감을 더해줌.

그리고 후에 올림픽을 치룬 연아는 올림픽보다 세계선수권이 더 긴장되었다고 밝힌 바 있음.


그리고 처음으로 연아가 시상식에서 애국가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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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연기를 모두 끝마친 연아가 처음으로 경기장 안에서 울었던 때였음.

이전까지만 해도 다른 선수들은 어떤 기분이길래 경기가 끝나고 바로 눈물을 흘렸을까

궁금했다고 했음.


연아는 쇼트 78.50점과 프리 150.06점 토탈 228.56점인 괴물같은 점수로

올림픽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고

시상식에서 또 한 번 흘린 뜨거운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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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결별.

2010년 8월, 브라이언 오서 측에서 김연아에게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받았다고 보도.

이후 김연아에겐 자신을 올림픽 금메달로 이끌어주신 은사님을 배신한 선수라며 비난을 받음.


하지만 이건 브라이언 오서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었음.

연아측은 계약기간이 끝난 브라이언 오서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던 것 뿐임.

해고통보가 절대적으로 아니었음.


그리고 브라이언 오서는 김연아의 전담코치가 아닌 시간제 코치였다는 점과

브라이언 오서에겐 연아와 같은 제자들이 있었다는 점.

비공개로 훈련중인 연아의 프로그램에 대해 누설했다는 것

(8월 25일자 인터뷰 "아주 멋진 프로그램입니다. 거쉰보다 훌륭합니다. 한국 전통 가요 중 하나인 아리랑이 피쳐링 되어있죠")

자신의 급여에 대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로 했고

재계약 과정에서 같은 소속의 일본 선수들을 김연아와 같은 크리켓 클럽에서 가르쳤다는 것

브라이언 오서가 일본 연맹관계자들과 접촉하면서 연아의 훈련장면을 일본 방송사측에서 무단으로 찍어가

방송에 그대로 내보낸 점.


브라이언 오서의 일방적인 언론플레이로 김연아는 이유없이 비난을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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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세계선수권

평소에도 연아는 "밴쿠버가 내 피겨 인생의 끝이다."라고 생각해 왔음.

이미 이룰거 다 이룬 연아에게 피겨를 해야 할 동기부여같은 것을 찾기란 어려웠을 거임.

그래서 고된 훈련을 버티는 것도 많이 힘들었을 것..


그리고 2010년 세계선수권 이후로 1년만에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오로지 한국의 색으로만 담아낸 "오마주 투 코리아"를 선보임.


은메달을 딴 연아는 시상식대에서 눈물을 흘림.

많은 사람들이 분해서 운 것도 아니냐는 소리를 했다지만

연아가 직접 밝힌 그때 눈물을 흘렸던 이유.

그리고 경기 직후 연아가 받은 문자 메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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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kiss&cry

김연아가 처음으로 고정출연한 키스앤 크라이.

처음엔 거절도 많이 했지만 "피겨스케이팅"을 알리고자하는 주된 목적으로 출연 결심.

그리고 처음으로 탈락자가 나오자 짧은 새에 정이 들었는지 눈물을 흘렸음.

또한 키스앤크라이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자로 거론되던 김병만.

발목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연기를 펼친 후 심사를 듣던 김병만은

풀썩 주저 앉으며 "아파서 무릎을 꿇고 듣겠다."라고 말했다.


그런 김병만을 바라보던 연아가 자신도 부상때문에 힘들었을때를 떠올랐는지 눈믈을 흘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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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으로 확정되자 눈물을 흘리던 연아.

경기는 개인의 일이고 이것은 국가의 일이자 많은 사람들이 힘을 쏟은 만큼 부담도 상당했다고 함

한 전문가는 김연아의 연설때문에 한국이 많은 표를 얻었을 것이라고 했음.

실제로 김연아의 연설 이후 박수갈채가 쏟아졌음.

유치활동이 끝난 연아는 긴장이 풀렸는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오한으로 고생을 했음.

하지만 안티들은 연아의 이런 모습이 연기하는 것이라며 악플세례를..

참 못된 심보가진 사람들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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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100인 파티 초청

타임지 100인 파티에 초청 될 당시 연아가 입었던 드레스를 디자인 한 사람은

바로 "로건"이었음. 그리고 로건이 뽑은 가장 기억에 남는 스타는 바로 김연아.



그 이유는 바로

바로 이 것. 이후에 다른 방송에서도 또 한 번 언급하며

무한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 함.


연아의 고운 인성이 그대로 보이는 일화 중 하나.



 



< 14 >

UN연설 당시 스티비 원더와 김연아

스티비 원더는 자신의 마이크가 꺼져있자 키기 위해 버튼을 찾아 더듬거림

당황한 스티비 원더와 옆에 보이는 연아의 머뭇거리는 손.

그리고 수행비서에게 도움을 줘도 괜찮냐는 의사를 물어 본 후

비서에게 OK사인을 받고 나서야 스티비 원더의 마이크를 켜 준 연아.


스티비원더는 아시다시피 시각장애인으로 앞을 보지 못함.

만약 연아야 호의로 의사를 묻지 않고 도와줬다고 한들, 

건 시각장애인인 스티비 원더에게 결례가 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김연아는 먼저 의사를 묻고 도움을 줬고 김연아의 배려심에 감동한 스티비 원더는

연아의 이름이 호명되자 폭풍복수를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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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여고 교생실습

졸업하기 위한 필수 과정인 교생실습을 위해 진선여고로 실습을 결정한 연아.

교생실습 첫날만 공개적으로 진행하고 그 후론 조용히 학교에 출근하며 수업하며 지냄.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 또한 매일같이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는 연아를 보며 놀랐다고 함.


하지만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인 황상민은 김연아의 교생실습을 "쇼"라고 폄하하며 날조.

이에 반발한 진선여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직접 김연아가 성실히 교생실습에 임했다는 것을 인증하기 시작함.

연아 측에서 황싱민 교수를 고소하려다가 취하했줬음에도 불구하고

반성하는 기미는 커녕 자신을 책을 읽어보라며 비아냥 거리던 황상민교수.



 



< 16 >

현역복귀 기자회견

2011 세계선수권 이후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연아.

밴쿠버가 자신의 피겨 인생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선수생활을 보낸 연아에게

올림픽이 끝난 이후 슬럼프에 빠지며 힘든 시기를 보냄


약 2년간 은퇴와 복귀의 기로에 놓인 연아는 복귀를 선택하며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현역으로의 복귀를 발표함.


이미 선수로서 이룰 거 다 이룬 연아에게 복귀라는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것.

하지만 자신보다 자신을 바라봐주는 국민때문에 복귀를 결정하지 않았을 까.






< 17 >

NRW 트로피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기 위한 최소기술점을 획득하기 위해 참가한 NRW트로피 대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2년이라는 공백기간이 무색할만큼의 기량을 선보이며

화려한 복귀전을 치룬 연아.


2012-2013시즌 최초로 200점을 넘었던 대회.

(김연아가 선수생활을 쉬었을 때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200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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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세계선수권

출국 전부터 최소 2장이상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겠다고 말하던 연아.

어린 선수들에게 올림픽이라는 경험을 시켜주고싶다고 말했음.

그리고 2년만에 참가하는 국제규모의 대회에서 연아는

쇼트와 프리를 클린하며 2번째 세계선수권 타이틀을 거머쥐며 올림픽 출전권 3장을 따냄.

또한 역대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틀어 2등과 가장 큰 격차로 우승.


하지만 석연찮은 판정은 여전했음. 쇼트에서 플립을 롱엣지를 받았기때문.

프리에서는 플립에 1.90점의 가산점을 받았음.

프레임수마저 똑같았던 완벽한 플립에 하나는 롱엣지를, 하나는 가산점을 줌.


이후 연아는 인터뷰에서 "두번째로 쇼트와 프리를 클린했다."며 부당한 판정이 있었음을 암시.


2년동안 메이저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선수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경기력을 선보인 연아에게

각국 해설자들은 믿을 수 없는 경기력이라며, 밴쿠버때보다 더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고 극찬함.

2년만에 복귀한 선수가 이러한 기량을 선보이는 것 또한 처음이며

김연아와 다른 선수들 간의 갭은 여전하고 오히려 그 차이가 더 벌어졌을 수도 있다고 함.

또한 CBC는 김연아의 프리 점수 발표 직전 점수가 어떻게 나올 것 같냐는 질문에

"new world record."라고 대답함.


또한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카롤리나 코스트너는 "김연아는 차원이 다르다."라고 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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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연아는 한번도 빙판 위에서 화난 표정을 지은 적이 없음.

그런 연아가 쇼트 웜업당시 자신의 생각대로 연습이 이루어지지 않자

마음이 많이 복잡했는지 심란하고 화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음.


다리가 굳어 제대로 된 점프 한 번 뛰어보지 못한채로 웜업은 종료됐고,

경기 직전까지도 풀리지 않아 본인 스스로도 많이 걱정됐다고 했지만 연아는 

쇼트 프로그램이었던 <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를 깨끗이 클린함.

긴장하던 연아는 프로그램이 끝나고나서야 안도의 미소를 지었음.

롱프로그램 < 아디오스 노니노 > 역시 깨끗하게 클린하며

러시아의 텃세에 연아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국민들의 걱정을 한방에 날림.

연아가 밴쿠버때처럼 경기 직후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연아는 의연했음.

그러나 연아는 자신을 피겨의 길로 이끌어준 류종현코치님의 포옹과 "다 끝났다."라는 말에

울컥하는 듯 보여지만 끝끝내 경기장에선 눈물을 참았음.

앞서 실수투성이의 경기를 마쳤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어처구니 없는 점수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연아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점수를 크게 깍이겠구나 싶었음.

하지만 연아가 군더더기 없이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이제 됐다."라는 안도의 마음을 가졌음.


하지만 러시아의 텃세는 엄청났음.

심각한 점수 난도질에 연아에게 돌아온 건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

많은 국민들은 분노했지만 연아는 의연했음. 그래서 더 슬펐음..


연아는 소치뿐만 아니라 이미 전대회에서도 수없이 당해왔던 편파판정에

소치 올림픽 점수를 확인하는 연아의 모습은 모든 걸 해탈한 듯 보였음.




그렇게 의연해보이기만 했던 연아도 경기장 뒷편에선 많은 눈물을 흘렸음.

그리고 다음 날, 메달 증정식에 나타난 연아의 눈은 많이 부어있었음.

방상아위원의 "연아야, 알지? 넌 최고야."라는 말에 또 눈물을 쏟음.

 

< 20 >

현역 선수로서의 마지막 아이스쇼

현역선수로서의 마지막 아이스쇼이자, 은퇴 아이스쇼.

모든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기자회견에서까지도 소감을 말하던 연아는 담담했지만

피겨선수생활 하는 동안 오랫동안 연아의 옆에서 함께했던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의

"연아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말에 참았던 눈물을 흘림.



"그녀의 은퇴 무대를 바라보는 심정은 씁쓸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겪는 인생의 한 부분 중 큰 고비를 지금 연아가 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아를 위한 기대와 슬픔의 감정이 교차합니다. 연아가 매우 자랑스러워요. 함께해서 행복해요.

연아가 안정적으로 편안하고 아름답게 또 우아하게 쇼를 해내는 것을 보며 뿌듯했습니다. 인생에 있어 의미깊은 시간이었어요.

제가 22년간 피겨스케이팅에서 안무가를 하면서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한 두번의 관계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나의 좋은 친구 세바스찬, 두 번째가 김연아였습니다. 칭찬과 격려, 그리고 잘했다고 포옹해주고 싶어요.

연아가 토론토를 떠났을 때는 그가 너무 그리워서 아이처럼 운 적도 있었어요

제게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키운 이유에 대해 자신의 곁에 두기보다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했는데 바로 그 마음이 내가 지금 연아를 대하는 심정입니다. 

연아가 앞으로 어떻게 진전해 나갈지 그 행보가 무엇보다 기대되요. 지난 시간동안 김연아와 유지해온 관계가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너의 안무가로서 함께 할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어'"


-데이비드 윌슨-

 

< 김연아의 경력 >

2014 ~ 헌법재판소 홍보대사
2014 ~ 제22회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2011 ~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집행위원회 집행위원
2011 ~ 2012 인스부르크 동계청소년올림픽 홍보대사
2011 ~ 국제스페셜올림픽 명예 홍보대사
2011 ~ 한국방문의 해 홍보대사
2010 ~ 서울특별시 글로벌 홍보대사
2010 ~ G20 서울 정상회의 홍보대사
2010 ~ 유니세프 친선대사
2010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선수위원회 위원
2010 ~ 한식세계화 홍보대사
2010 ~ 바보의 나눔 홍보대사
2010 ~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2009 ~ 방송통신위원회 디지털전환 홍보대사
2009 ~ 인천국제공항 명예홍보대사
2009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
2009 ~ 한국방문의 해 홍보대사
2007 ~ 국정홍보처 다이내믹 코리아 홍보대사
2007 ~ 아시아나항공 명예홍보대사
2006 ~ 경기도 홍보대사
2003 ~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 김연아의 수상경력 >

2014 포브스 선정 올해 아시아의 대표적인 자선가
2014 제8회 포니정 혁신상
2014 제22회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은메달
2014 제68회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시니어 여자 싱글 우승
2013 제46회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여자 싱글 우승
2013 ISU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우승
2013 제67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시니어 여자 우승
2012 NRW 트로피대회 여자 싱글 우승
2012 제17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공로상
2012 국민훈장 모란장
2011 SBS 연예대상 특별상
2011 대한민국 국회대상 올해의 공로상
2011 제9회 올해의 브랜드 대상 특별상 스포츠인부문
2011 외신기자클럽 시상식 외신홍보상
2011 한국 관광의 별 어워드 특별공로상
2011 ISU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2위
2010 미국스포츠아카데미 선정 올해의 여자 선수상
2010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2010년 가장 인상적인 스포츠 선수 10인
2010 직장인이 뽑은 올해를 빛낸 인물 1위
2010 미국 여성스포츠재단 올해의 스포츠우먼
2010 제5회 자랑스런 한국인상
2010 미국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0 ISU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2위
2010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
2009 제1회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 어워드 문화예술부문
2009 제40회 경기도체육상 스포츠 스타상
2009 ISU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1위
2009 제4회 앙드레김 베스트 스타 어워드 스타상
2009 대한민국광고대상 모델상
2009 제47회 대한민국체육상 경기부문 최우수상
2009 ISU 세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1위
2009 제55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우수상
2009 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1위
2008 대한민국 인재상
2008 윤곡여성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
2008 제8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스포츠부문상
2008 컵 오브 차이나 여자 싱글 1위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 여자 싱글 1위
2008 ISU 세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3위
2008 한국 이미지 새싹상
2007 ISU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1위
2007 컵 오브 러시아 여자 싱글 1위
2007 컵 오브 차이나 여자 싱글 1위
2007 제12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
2007 대한민국 스포츠 레저 문화대상 특별상
2007 제53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경기부문 최우수상
2007 제45회 대한민국 체육상
2006 ISU 그랑프리 파이널 1위
2006 대한민국 국회대상 스포츠부문 대상
2006 제1호 글로벌 인재상
2006 트로피 에릭 봉파르 여자 싱글 1위
2006 스케이트 캐나다 여자 싱글 3위
2005 제60회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시니어부 우승
2005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1위
2005 ISU 주니어 그랑프리 불가리아 대회 여자 싱글 1위
2005 ISU 주니어 세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2위
2004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2위
2004 ISU 주니어 그랑프리 중국 대회 여자 싱글 2위
2004 ISU 주니어 그랑프리 헝가리 대회 여자 싱글 1위
2004 전국체육대회 우승
2003 골든베어대회 1위
2003 전국체육대회 우승
2002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트로피대회 노비스 부문 우승
2002 종별선수권 우승
2002 전국체육대회 우승
2001 종별선수권 우승
2000 종별선수권 우승
1999 전국체육대회 우승


 


여자 싱글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그랑프리 파이널, 사대륙, 세계선수권, 올림픽 우승)


여자 싱글 최초로 200점대, 210점대, 220점대 돌파


주니어, 노비스 시니어 통틀어 지금까지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에 입상

(금메달 28개,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를 기록한 피겨 역사상 유일무이한 올포디움 선수


모든 판정이 공정했다면 김연아의 기록은 올포디움이 아닌 올골드였을 것.


쇼트와 프리 두 경기 중 하나는 반드시 1위 기록


현재 프리, 총점 세계신기록은 김연아의 것.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첫 세계신기록을 작성 후 자신이 세운 기록은 모두 자신이 깸


총 11번의 세계신기록 갱신


밴쿠버 동계올림픽때 기록(228.56점)은 기네스에 자동 등재


올림픽 최초로 쇼트와 프리 모두 실수없이 클린하며 우승


타임지에서 지정한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100인에서 영웅부분 2위 기록, 파티에 초청


여자선수 최초, 동계종목 선수 최초, 최연소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

메시와 베컴, 페데러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함.


지금까지 알려진 기부 금액만 25억. 비공개 기부까지 합하면 30억에 달할 것으로 추정


광고촬영은 훈련에 지장이 없도록 진행하였으며, 계약조건은 유망주 후원과 기부.


지금까지 맡은 홍보대사는 모두 계약금 없이 채결. (하지만 모든 모든 행사에 성실이 임함)



 

이 글 하나로 김연아에 대해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는게 아쉬울 뿐..

여기에 적혀있는 것 외에도 김연아가 겪었던 고생, IMG와 IB스포츠의 악행

잽머니로 뺏어간 메달, 마오 위주로 개정되던 피겨룰

플립의 엣지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붙기 시작한 롱엣지.

그래서 트레이드마크라고 불리던 3F-3T를 과감히 버리고 더 강력한 3Lz-3T를 들고나온 무시무시한 연아.


지원도 없고 환경도 열악한 대한민국에서 이런 선수가 나왔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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